명예가 값싸진 순간 : 레지옹 도뇌르(La Légion d'honneur) 훈장의 현재와 위기
- Etc
- 2025. 7. 14.
명예가 값싸진 순간 :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현재와 위기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다. 영예로운 공로를 인정받는 자리에서, 이제는 논란과 불신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훈장이 흔들리고 있다.
1802년 나폴레옹이 창설한 이 훈장은 프랑스를 위해 뛰어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수여되며, 능력주의(meritocracy)를 상징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수여 사례를 보면 그 기준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논란의 인물들, 그리고 훈장
- 마를렌 시아파 전 장관은 마리안 기금 스캔들에 연루된 상태에서 2025년 6월 훈장을 수여받았다. 기금 유용 의혹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인질극 대응으로 훈장을 받았으나, 2025년 부패 혐의 유죄로 박탈됐다. 최고위 인사의 박탈은 이례적 사례다.
- 아녜스 뷔진과 올리비에 베랑, 모두 코로나19 위기 대응에서 신뢰를 잃은 보건 당국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장을 받았다.
- 에릭 뒤퐁-모레티 법무부 장관은 이해충돌 의혹과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을 빚었다.
- 브루노 르 메르 경제부 장관은 경제실패의 책임자로 지목되었지만,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외에도 과학계, 방송계, 재계 인사들 중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물들이 훈장 수여 대상이 되며 공분을 사고 있다.
무너지는 상징 : 무엇이 문제인가?
1. 능력주의의 붕괴
훈장은 본래 공적 중심의 보상이었으나, 지금은 정치적 친분이나 인지도에 따라 수여되는 모습이다. 이는 능력주의를 훼손하고,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신뢰를 약화시킨다.
2.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
논란 많은 인사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결정은 국민의 눈에 '권력 내부의 보상'으로 비친다. 이는 공공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3. 훈장의 가치 상실
훈장은 ‘명예’의 상징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조롱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의 무게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시사점 : 단순한 훈장 문제가 아니다.
* 정치적 판단의 무게
훈장 수여는 대통령의 재량에 따른다. 따라서 그 결정은 곧 정치적 리더십의 윤리 기준을 드러낸다. 훈장이란 한 개인에게 주는 영광인 동시에,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 시대의 가치 반영 부족
과거엔 군사적 공로, 국가 발전 중심이었지만, 오늘날 국민은 윤리성, 투명성, 책임성을 기준으로 본다. 훈장 제도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대중의 존경을 받기 어렵다.
* 개혁 없인 회복도 없다
수여 기준의 재정비와 절차의 투명성 확보, 그리고 명백한 공로가 입증된 인물에 한한 수여가 필수적이다. 단순히 제도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윤리와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
마무리 : 영광은 공짜가 아니다.
레지옹 도뇌르는 단순한 훈장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사회가 무엇을 존중하고, 누구를 본보기로 삼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상징이 흔들릴 때, 국민은 지도자를 의심하고, 국가는 자존을 잃는다. 훈장은 다시 엄격하고, 신중하게, 진정한 공로자에게만 수여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영광스러운 전통을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한국 인물도 있다. 바로 조양호 한진 회장이다. 부친에 이어 자녀까지 이 훈장을 받은 집안으로 알려지며, 프랑스가 외국 인사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기준과 그 상징성에 대해 한국 사회 역시 되묻게 된다. 과연 오늘날 레지옹 도뇌르는 진정한 공로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국제적 외교나 이해관계의 상징으로 변질된 것인가?
- Raphaelle.